북파공작원 '비둘기편대'를 아시나요

아시아경제   양낙규기자   2012.02.04
한국군은 언제부터 북파공작부대를 운영했을까.
이들에 관한 특별법에는 '1948년 8월15일부터 1994년 12월31일 사이에
특수임무의수행을 위하여 파견되었거나 이와 관련한 교육 훈련을 받은 자'로 규정하고 있다.
북파공작부대는 1948년 태동해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발표때까지 북한 지역에 파견되어 활동한 무장 첩보부대를 말하는 셈이다. 대표적인 한국군의 북파공작부대는 육군의 HID(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해군의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 공군의 OSI(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이 손꼽힌다. 이밖에 해병대의 MIU, 공군의 실미도 등에서 북파공작원이 양성됐다.
1950년대에는 이북의 지리를 잘알고 북한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채용됐다. 연령과 성별에 대한 차별은 두지 않았다. 하지만 60년대 이후에는 가정과 사회적인 문제점이 없는 사람 등 조건에 맞게 선발됐다.
북파공작원 부대중 가장 규모가 컸던 육군의 HID다. 1950년대 7월 육군본부 정보국내 공작과에서 편성된 이 부대의 최초 부대장은 이철희· 장영자 사건으로 유명한 이철희 대령이다. 이후 부대는 새롭게 창설된 육군첩보부대에서 육군정보사로 불리며 첩보업무를 담당했다. 영문표기도 1961년에 HID에서 AIU(Army Intelligence Unit)로 변경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각군 정보부대는 다시 통합시켜 국군정보사령부(DIC)로 흡수되게 된다.
공군의 실미도는 영화로 더 유명하다. 실미도와 관련된 사건은 지난 1971년 8월 23일 서울 노량진에서 폭사한 실미도 부대원들과 2002년 3월과 9월 서울 도심에서 LP 가스통에 불을 붙이는 시위다. 이 사건으로 이들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3년 설립된 해군의 UDU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공작임무를 수행한 5국에서 주도했다. 설립당시 부대정식명칭은 해군첩보부대 502기지로 신성기업 마산지사라고도 불렸다. 502기지부대의 부대원들은 비둘기요원으로 해군장병들이 무작위 착출됐다. 이들 중 신체검사와 체력검정 불합격자는 다시 부대로 보내지기도 했다.
이들이 1974년 도입한 무기는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코스모스급 특수작전용 잠수정이다. 해군의 공식적인 기록인 최초잠수함 돌고래급보다 이전인 셈이다. 코스모스 특수작전용잠수정은 10명 내외의 특수요원이 탑승해 정찰, 기뢰봉쇄 등의 특수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특히 대형함정을 폭파할 수 있는 250Kg무게의 Big Charge 6개, 50kg무게의 Small Charge 10개, 일명 접시폭탄으로 불리는 Impact Mine을 싣고 다녔다.
코스모스의 기준배수량은 약 70톤급 정도로 정규잠수함으로 보기 힘들며 도입비용이 저렴하고 운용유지가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 이 잠수정에 탑승했던 승조원들은 이후 잠수함대에 주력이 될 핵심요원들을 양성하는데 도움이 컸다. 현재도 코스모스급은 한국해군에서 운용되고 있으며 장보고급 이상의 중형 잠수함의 부장으로 임명되기 전에 대위, 소령급 장교들의 지휘코스로도 활용되고 있다.
코스모스를 도입할 당시 이탈리아 잠수정 기술자와 교관들도 한국에 같이 왔다. 비둘기요원들에게 폭탄조작, 수중운반, 폭파 등 잠수정 운영법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다. 당시 비둘기요원들이 받았던 훈련은 'U1'이라고 불렸으며 28주과정이었다. 훈련내용은 잠수훈련, 항해기법, 기술정비, 폭약설치 등 다양했다. 또 정기적으로 무귀환 훈련, 유사지역침투훈련, 탈출훈련을 받았다. 이 훈련은 1985년이후 'S-1'이라고 명칭이 바뀐다.
이후 해군첩보부대 501기지소속 사자편대 6개팀이 502기지부대로 배속되면서 비둘기편대와 같은 부대에서 활동하게 된다. 502기지부대는 1990년 11월에 국군 정보사령부 제 912부대로 개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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