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나는 모릅니다 아버지 건강 좋습니다”
기사입력 2010-06-06
 

[중앙일보 안성규] 중앙선데이

한국 언론 최초로 중앙SUNDAY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을 만났다. 마카오의 알티라 호텔 식당에서다. 그는 20대 여성과 식사 중이었다. 취채팀을 만난 그는 놀라지도, 불편해 하지도 않았다. 사진도 찍으라고 했다. '망명설'에 대해 그는 “전혀. 유럽쪽으로 갈 계획이 없습니다. 유럽쪽으로 제가 왜 가요.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라며 부인했다. 인터뷰는 약 10분간 이어졌다.
4일 오전 10시30분(현지시간), 마카오의 신도심 코타이에 있는 38층짜리 알티라 호텔 10층. 양식을 파는 오로라 식당 안쪽,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남녀가 식사를 하고 있다. 남성은 입구를, 세련된 모습의 20대 여성은 창 쪽을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는 기자의 눈이 남성의 눈과 마주쳤다. 남과 여는 서로 뭔가를 말하더니 여성이 먼저 자리를 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살이 넉넉한 남성의 얼굴. 며칠간 면도하지 않은 듯 텁수룩했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두 달간 추적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39)이다. 그를 그렇게 찾아냈다.
김정남은 식당을 나가려고 계산을 서둘렀다. 그때 어디선가 전화가 오자 표준 한국말로 답한다. “여보세요~ 음. 알았어, 알았어.” 계산을 마친 그는 식당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쪽으로 나아갔다. 거기서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있는 취재팀을 만났다. 놀라거나 불편해 하지 않는 표정이다. 김정남씨는 “기자시죠?”라고 선수를 친다. 기자가 “사진 몇 장 찍겠다”고 하자 찍으라고 한다. 이렇게 대화가 시작됐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됐죠?”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그를 잡았다.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온 중앙SUNDAY 기자입니다. 중앙일보의 일요일 신문이죠.
“남쪽 기자시군요.”
조금 신기하다는 듯이 기자를 보는 그에게 명함을 건넸다.
명함 내용을 힐끗 보더니 긴 소매 셔츠의 앞주머니에 넣었다.
“남쪽 기자는 처음 만납니다. 지금까지 일본 기자는 좀 만났지만.”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해서 왔습니다. 몇 가지 좀 여쭙겠습니다.
“….”
-아우님(김정일 위원장의 3남이자 후계자인 정은)이 김옥(46) 여사의 아드님이라는 말씀을 하고 다니신다는 얘기를 마카오에서 들었습니다.
“(여유를 부리던 얼굴이 딱딱해졌다) 뭔 얘기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오전에 아드님을 만났습니다.
“가족 프라이버시는 지켜주시죠.”
-아버님(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은 어떠세요?”
“좋으십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안함? 나는 모릅니다. 그만하시죠.”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알려진 정은(28)은 지금까지 김 위원장의 두 번째 부인 고영희(2004년 사망)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김정남씨는 첫 부인 성혜림(2002년 사망)의 아들이다.
기자가 질문한 '김옥 여사'는 김정일의 '네 번째 여성으로 권력 실세'라는 설명이 따라다니는 인물이다. 마카오의 지인들은 김정남씨가 '김정은은 고영희의 아들이 아니라 김옥의 아들이다'라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고 기자에게 전해 줬다.

서울의 고위 정보 소식통도 “정은의 생모가 김옥이라는 사실은 북쪽 지도부 안에서도 아주 제한된 사람들만 아는 내용”이라며 “이게 널리 알려지면 정은이 김씨 가문의 혈통을 정통으로 계승하지 못한 인물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옥의 정은 생모설은 후계 구도가 뒤틀릴 수 있는 왕가 혈통의 비밀인 셈이다.
김정남씨의 아들, 즉 김정일 위원장의 손자 김한솔(15)군을 이날 등굣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김군의 얼굴엔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었다.
질문을 국내외 정보 소식통들이 전해 준 '김정남 망명설'로 옮겼다.
-유럽 쪽으로 가실 거란 얘기가 들리던데요.
“유럽 쪽으로 간다는 건 무슨 의미죠? 제가 왜 유럽 쪽으로 가죠?”
단답형에 가깝던 정남씨의 말이 길고 복잡해졌다.
“아이고…. 전혀. 유럽 쪽으로 갈 계획이 없습니다. 유럽 쪽으로 간다는 의미가 뭔지 몰라가지고…. 유럽 쪽으로 제가 왜 가요.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김정은 혈통의 비밀, 마카오선 “고영희 아닌 김옥의 아들”
-사시는 곳을 옮긴다는….
“전혀 그런 계획은 없는데요. 루머 같은데요.”
-그러면 유럽의 한 나라로 간다는 게 전혀 사실이 아닌가요.
“그 나라는 아시다시피 제가 과거에 여행을 했지 않습니까. 거기로 갈 이유가 없죠.”
그의 망명설 부인은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화제를 식사에 동행한 여성으로 돌렸다.
-호텔에 한국분과 같이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예?' 놀란 목소리였고 짜증 난다는 표정에 헛웃음을 지었다.
마카오 현지 지인들에 따르면 함께 투숙한 한국 여성은 마카오 카지노에서 딜러를 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질문 주제를 김정은과의 관계로 돌릴 차례다. 여기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해 일본 언론들은 정은이 정남씨의 측근들을 압박했다고 보도했다. 고위급 출신의 한 탈북자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2009년 4월의 이른바 '우암각 사건'이다. 우암각은 김정남의 평양 별장으로 종종 '파티 정치'가 벌어진다.
김정은이 보위부를 시켜 우암각을 수색하고 우암각 관리인을 연행해
파티 참석자들을 파악한 뒤 일부를 제거했다는 게 우암각 사건의 요지다.
-지난해 4월 우암각 사건이 있었다는데…. 선생님 아우님이 우암각을 수색했다는….
“모릅니다.” 안색을 바꾼 그는 질문에 더 이상 답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엘리베이터 앞 10분 인터뷰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취재진이 정남씨를 찾는 노력은 첩보전에 가까웠다. 중앙일보의 토요섹션인 '사람섹션 J'(5월 8일자)가 그를 찾으러 마카오를 훑었다. 그런 얼마 뒤 기자의 마카오 지인들은 “정남이가 곧 중국에서 돌아온다”고 했다. 3일로 추정됐다. 그래서 3일 종일 마카오 국제공항에서 대기했다. 그러나 허탕. 낙담하고 있는데 4일 오후 과거 출장 때 알게 돼 술도 한잔 했던 현지 여행사 사장이 한마디 전해 줬다. “알티라 호텔에 한국 여자와 있는 걸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호텔은 엄청난 장애물이었다. 도박장을 찾는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았다. 보통은 1층에 로비가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이 호텔의 로비는 38층에 있다.

방에서도 체크아웃이 되니 로비를 통하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 1층 로비나 38층 로비 모두 지름이 20m쯤 될까. 조그마한 공간이라 죽치고 기다리기도 어렵다. 호텔 종업원들의 눈치가 매서웠다. 그런데 '늦은 아침을 먹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10층 식당으로 갔는데 마침 김정남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언론만 해냈고 한국 언론은 한 번도 못했던 '김정남 찾기'가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마카오=안성규 기자 skme@joongang.co.kr |


북한 김정남 등에는 온통 용 문신, 연 생활비 50만 달러

기사입력 2010-06-06

( 김정남씨의 ‘내연녀’ 이혜경씨가 아들 한솔, 딸 솔희와 살고 있는 마카오의 가안각 아파트. 맨 위층 전체를 전세 냈다고 한다. 오른쪽은 정남씨가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출신 서영라씨와 현재 살고 있는 마카오의 해양화원 아파트. 22층에서 요리사, 접대원 등 3명의 보좌인과 살고 있다. 마카오=신인섭 기자 )


4일 마카오 시내 알티라 호텔에서 만난 김정남(39)씨는 ‘잘나가는 재벌 2세’로 보였다.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지만 권력의 그늘마저 즐기는 여유와 호사스러움이 묻어났다. 마카오 현지의 우리 교민들은 “늘 모자에서 신발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보내주는 ‘어느 정도의 후원’으로 그는 ‘마음대로 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고급 호텔 투숙도 예사롭다. 함께 투숙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한국 국적의 여성도 있다.
김정남씨의 현재 상태는 ‘백수’다. 특별히 돈 버는 활동을 하지 않는데 중국과 마카오를 오가며 잘 산다. 마카오의 김정남 지인들과 정보 소식통들에 따르면 그는 베이징에 시가 100만 달러짜리 주택 2채, 마카오의 코타이 해양공원 고급 주택단지에 100평 규모의 주택 2채를 보유하고 있다. 몰고 다니는 차도 3대다. 베이징과 마카오의 집에는 ‘정남의 여인’ 셋이 집을 나눠 살고 있다.
정남씨의 본처 신정희(30대 후반 추정)씨가 사는 곳은 베이징의 북쪽 외곽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드래곤 빌라라고 한다. 신씨는 평양 초대소 복무원 출신으로 평양에 자주 들어가 남편 대신 정치를 한다는 얘기가 있다. 김 위원장의 손자인 아들 금솔(13)군과 함께 살고 있다. 금솔은 캐나다 국제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카오에는 정남씨의 여인 두 명이 산다. 한 명은 얼마 전부터 별거에 들어간 이혜경(30대 후반 추정)씨로 전해졌다. 아들 김한솔(15)군과 딸 솔희(11)양은 엄마 이혜경씨와 살고 있다. 교민들에 따르면 이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다니는 마카오 련국(聯國) 국제학교(School of Nations)에 와서 한국인 학부모들과 만나고 전화도 하면서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교민들과 교류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마카오 에스트라다 거리(加思欄馬路·Estrada Pe. S.Fransico No 8-10)의 가안각(嘉安閣) 아파트 12층 전체를 전세 내 산다. 1990년대부터 김정남을 알았다는 현지 교민 양재임(53)씨는 “이씨가 얼굴은 예쁘장하지만 성격이 칼칼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3일 밤. 가안각 아파트 맞은편 폐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12층 집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아파트 사진을 찍으며 살폈지만 커튼 뒤의 움직임을 알기는 어려웠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이씨를 취재하기 위해 아파트 쪽으로 갔다.

마침 등교시간인 오전 8시쯤이었다. 10대 남학생이 가방을 메고 아파트를 나섰다. 마카오에 와서 알게 된 얼굴, 김정남씨가 아주 사랑한다는 한솔군이었다. 키가 제법 컸고 몸집도 있었다. 코밑 수염이 거뭇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따라가는 취재진을 보고도 당황하는 빛은 없었다. 영어로 대화가 진행됐다. 한솔군은 영국식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Are you Mr. Kim?(학생 성이 김씨인가)”
“Yes.(네)”
“Are you Mr. Han Sol Kim?(이름이 김한솔인가)”
“Yes.(네)”
한솔은 단답형으로, 명료하게 대답했다.
“Which school are you going to?(어느 학교를 다니지?)”
한솔은 가슴에 있는 학교 마크를 가리키면서 “School of Nations.(국제학교인데요) Are you press?(기자예요?)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제3국을 거론하며 적당히 둘러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자인 한솔(15)군과 손녀 솔희(11)양.
마카오 련국 국제학교의 2008년 연감에 나와있는 사진이다.
“Are you son of that father?(학생이 그분의 아들인가?)”
“Yes.(네)”
“I am very interested in your family. So can I interview you?(학생 가족에 관심 있는데 인터뷰할 수 있나)”
“No comment. I want my privacy.(노 코멘트.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세요)”
‘영국왕자도 프라이버시 보호를 못 받는다’고 하자 한솔은 씩 웃었다.
“Your sister Solhui doesn’t go to school?(왜 동생 솔희는 학교에 안 가나)”
평소에는 남매가 스쿨 버스로 함께 등교하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해 본 질문이었다.
“She goes to another school.(다른 학교 다녀요)” 교민들에 따르면 남매는 한 학교에 다닌다.
“So can I talk to your mom and dad? Do you live with your parents?(그러면 학생은 부모님과 함께 사나)
“Yes.(네)
“Can I reach your father through you.(그러면 학생을 통해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겠네)”
“No, I am sorry I should go.(아니요. 미안합니다. 가야겠어요)”
버스가 왔다. 그는 버스를 타고 떠났다. 취재진은 한솔군이 미성년자임을 고려해 사진을 찍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자인 한솔(15)군과 손녀 솔희(11)양.
마카오 련국 국제학교의 2008년 연감에 나와있는 사진이다
한솔을 보낸 뒤 아파트 12층으로 올라갔다. 인기척이 없었다.
미리 확보한 이혜경씨의 휴대전화로 통화를 시도했다.
기자가 한국말로 하자 곧 바로 전화를 끊더니 이후 아예 받지 않았다

정남씨는 현재 마카오 해양화원 22층(海洋花園 22樓) 대형 아파트에서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출신 서영라(30대 초반)씨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에서 파견된 요리사, 접대원 두 명 등 ‘세 명의 보좌인’도 같이 있다고 한다. 3일 오후 9시쯤 가까스로 알아낸 집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했다. “이보시오.” 투박한 북한 말투의 여성 목소리가 들렸다. 말을 나누지 않았는데도 저쪽에서 의심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전화를 끊고 중국 지인에게 부탁해 중국말로 다시 전화했다.
“김 선생 계십니까.”
“당신 누구요.”
“안씨인데, 김 선생 안 계십니까.”
“니스쉐(누구쇼)”라고 거듭하더니 “늦은 밤에 무슨 전화를 하나”라면서 끊었다.
통화를 도와준 중국 지인은 상대방의 중국어가 어설펐다고 했다.


김정남씨와 함께 살고 있는 서영라(왼쪽)씨와 본처 신정희(오른쪽)씨.
2001년 정남씨가 일본 나리타 공항에 불법 입국하다 추방될 때 촬영된 모습이다.
서씨는 당시엔 경호원으로 알려졌다. 앞의 아이는 신씨와 정남씨 사이에 태어난 아들 금솔.

3명의 처·첩과 그 자녀 등 대규모 식솔을 거느린 정남씨에겐 본인과 가족의 호화 생활, 자녀들의 국제학교 학비, 양육비를 고려할 때 연간 생활비가 최소 50만 달러 이상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는 게 정보 소식통들의 얘기다. 예전에는 보위부 등 북한 내 여러 기관으로부터 자금이 들어왔지만 요즘은 1년에 한두 번씩 아버지가 보내주는 ‘용돈’이 전부라는 것이다.
김정남씨의 사생활은 자유분방하다. 4일 밤 그가 잘 간다는 술집인 ‘금룡 가라오케’로 가봤다. 젊은 아가씨들로 가득했다. 마카오에서 20년 동안 살았다는 한국 교포 리리 마담을 만났다. 그는 김정남에 대해 묻자 말을 안 했다. 대신 “금룡 주점은 주로 매춘하려는 사람들이 온다. 한번에 홍콩 돈 4000달러(약 60만원)가 든다”고 했다. 정남씨의 자유분방함은 신체에도 미쳐 등에는 온통 용 문신을 하고 있다.
한 교민은 “90년대 초반에 마카오의 만다린 호텔 수영장에서 정남씨의 등에 큰 용 문신이 있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마카오의 고급 카지노 호텔 베네치안 2층에 있는 일식집 에도(江戶)를 즐겨 찾으며 한 조각에 100달러(12만원) 정도인 ‘일본 와규 스키야키’도 즐긴다고 한다. 동거하는 서영라씨와 마카오 시내의 한 서양식 백화점(마요한)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쇼핑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있다.
김정남씨가 마카오에 산 지는 오래됐다. 그가 1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 찾았다는 한국 음식점 강남홍의 주인 양재임씨는 “90년대 초반 정남씨를 호텔에서 보곤 했는데 인사도 잘하고 서글서글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년배 한국 교민들과 시내 한국 음식점인 ‘이가(李家)’에서 소주를 마시고 한국 노래방도 다녔다. 대신 노름에 빠진 것은 아닌 듯하다.

리스보아의 최고급 VIP 카지노에서 정남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카지노의 롤링 에이전트로도 일했던 양씨는 “정남씨가 주로 ‘마발이’에서 놀았다”고 했다. 마발이는 일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소액 카지노다. 요즘엔 마카오 한인 사회와 교류가 뜸하다고 했다.
홍콩·마카오=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김정남 ‘유럽 망명설’ 배경은 2009년 봄 우암각 사건

기사입력 2010-06-06

마카오 시내 알티라 호텔 10층 승강기 앞에서 기자와 얘기를 나누는 김정남씨.
‘모자에서 신발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닌다’는 교민들의 말처럼
정남씨는 랄프로렌 셔츠, 페라가모 스웨이드 로퍼 차림이었다.
모자, 셔츠, 청바지, 신발까지 블루 톤으로 색상을 통일한 패션 감각이 돋보였다. 마카오=신인섭 기자



“개XX, 어린 놈이 나를 죽이려고 해.”
2009년 4월 말, 김정남이 분노하며 언급한 내용들이 우리 한국의 정보망에 들어왔다. 마카오에 있던 그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싱가포르로 몸을 피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김정남씨는 왜 분노했을까. ‘어린 놈’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그는 왜 달아나듯 싱가포르로 가야 했을까.
고위급 출신 탈북자는 이른바 ‘우암각 사건’을 배경으로 꼽았다.
“지난해 4월 초 평양 중구역의 한 안가로 국가보위부 수색팀이 들이닥쳤어요. 안가의 이름은 우암각인데 납치됐던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살던 고급주택이었습니다. 부부가 탈출한 뒤 초대소로 사용돼 오다 1997년께부터 김정남의 활동무대가 됐어요. 해외에 살면서 평양에 들어갈 때마다 어머니 성혜림(2002년 사망)이 살던 본가보다는 우암각을 즐겨 찾아 계속 ‘비밀 파티 정치’를 벌여왔거든요. 아버지의 흉내를 낸 파티인데 실제론 김정남 지지세력들의 모임이었던 겁니다.”
우암각을 급습한 보위부는 관리원 몇 명을 연행했다. 조사가 시작됐다. 조사의 핵심은 ‘파티에 참석한 인물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김정남 측근이 누군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조사를 받고 나온 최측근의 전화를 받은 정남씨는 서둘러 싱가포르로 도피했다.
그로부터 5년 전인 2004년 10월에도 정남씨는 동생 김정은에게 비슷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이종사촌 누이 김옥순을 방문하고 있던 정남씨에게 오스트리아 당국은 “당신을 암살하려는 북한인의 계획을 파악했다”고 통보해준 것이다.

그런 경험 때문에 우암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남씨가 느끼는 공포는 컸을 것이라고 정보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그때부터 정남씨의 머리에 망명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계 경쟁으로 결코 가까워질 수 없던 이복 형제 ‘정은과 정남’의 관계는 우암각 사건으로 분명해졌다. 정남의 완벽한 패배. 그는 엎드려야 했다. 도피처 싱가포르에서 아버지(김정일 국방위원장)와 고모부인 장성택(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의 남편) 노동당 행정부장에게 도움을 청해 우선 칼날을 피했다.

그리고 해외 언론과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후계 문제에 관심이 없다. 조용히 살겠다”는 의미로 읽히는 언급을 반복했다. 이런 언급은 평양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속으론 분을 삭히지 못하고 신정희·이혜경·서영라 등 부인과 내연녀, 오스트리아에 사는 이종사촌 누나 김옥순 같은 사람들에게 본심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특히 김정남씨는 지난해부터 정은을 ‘멍청한 어린애’라고 비꼬며 ‘후계 자격이 없다’는 식의 말을 해왔다고 마카오의 지인들이 전하고 있다. 자격이 없는 이유 중엔 이른바 ‘혈통의 비밀’도 포함돼 있다.

김정은의 생모가 그동안 알려진 김정일 위원장의 처 고영희가 아니라 김 위원장의 비서출신인 김옥이라는 얘기다. 다만 김정남씨는 4일 기자와 만날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마카오의 김정남 지인들은 다음과 같이 정남씨의 사석 발언들을 소개했다.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한 김옥은 80년께 기쁨조로 발탁됐다. 곧 김정일의 건강관리 담당 서기가 됐고 내연의 관계로 발전했다. 김옥은 84년 남자 아이를 출산했는데, 이 아이가 정은이다.(북한은 지난해 부터 정은을 82년생으로 소개하고 있다.) 아이는 고영희(2004년 사망)의 아들로 꾸며지고, 맡겨졌다.”

다른 고위급 탈북자도 “정남씨의 얘기가 맞다. 정은의 출생 비밀을 아는 사람은 장성택ㆍ김경희 등 김정일의 가족과 오극렬 같은 극소수 핵심 실세다. 김옥은 고영희 생존 시에도 김 위원장의 해외 방문을 수행하고 자녀들의 사생활을 도와왔다. 고영희 사후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이런 관계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김옥은 김정일 서기실 부부장 및 국방위원회 간부로 임명됐으며 당·군 인사에도 관여한다는 설이 제기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고 했다.
김정남은 90년대 중반까진 선두 후계자였다. 김일성 전 주석이 백두산을 배경으로 부자의 사진을 찍어 김정일의 ‘권력 승계’를 인정하는 상징 조작을 했듯, 김정일도 정남씨와 함께 백두산을 무대로 사진을 찍었다. 승승장구하던 정남은 96년 이모 성혜랑의 미국 망명으로 위기에 처한 듯했지만 큰 타격은 받지 않았다. 그러나 2001년 5월 일본 밀입국 사건이 불거지면서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당시 정남은 도미니카공화국 위조여권을 갖고 나리타 공항으로 입국하다 추방됐다. 이후 베이징과 마카오에서 칩거 생활을 하면서 이따금 평양을 방문하는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다. 아버지의 질책이 두려워 칩거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아버지 방식의 통치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직격탄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날렸고 이 때문에 아버지와 거리가 생겼다는 게 고위급 출신 탈북 인사의 말이다.

그런 가운데 정남씨는 당·군·내각 등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는 외곽 작업을 계속했다.
돈이 풍성했을 때는 고급 롤렉스 시계를 사서 돌리기도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정남씨는 장성택과 오극렬의 후원을 받았다. 다음은 이 소식통의 증언. “장성택이 김정남을 지지한 것은 단순히 고모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성택이 79년 월권혐의로 강선제강소 초급 당비서로 좌천되었을 때 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이 김정일에게 건의해 복권된 인연으로 시작한다.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여동생인 고모 김경희도 정남에게 애정을 듬뿍 줬다. 오극렬의 후원은 그의 아들 오세욱이 김정남씨와 맺은 어릴 때부터의 우정에서 비롯됐다. 북한엔 중국의 태자당과 비슷한 봉화조라는 게 있는데 오세욱은 그 집단의 리더이며 ‘평양의 왕발’로 소문난 인물이다.”
그러나 평양을 벗어난 김정남의 힘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공간을 정은이 치고 들어갔다.
김정은은 2006년께 평양 음악대학 확장공사를 지휘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샛별대장’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2008년 9월 김정일이 쓰러졌을 때 김씨 가문의 속사정을 아는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는 김정일 사후 김정남을 후원하는 장성택과 김정은을 지지하는 ‘김옥과 김옥의 후원자인 이제강 노동당 제1부부장(6월 2일 사망)’ 사이에서 후계를 둘러싼 다툼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돌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김정일이 그해 12월께부터 정은을 ‘청년대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지난해 초부터 군과 특히 보위부 등의 안전기관 시찰 시 김정은을 대동하며 당ㆍ정ㆍ군 실세들의 충성맹세를 받아냄으로써 후계 작업을 본격화했다. 또 김정일은 장성택과 이제강에게 “정은을 도우라“는 뜻을 전했으며, 좌천될 위기에 처한 장성택이 구제된 것도 김경희 부장이 ‘정은을 후계자로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가능했다는 얘기도 있다.
아버지와 실세들의 도움으로 군과 보위부를 장악한 김정은은 김정남 세력에 대해 본격적인 ‘가지 치기’에 착수한다. 그 과정에서 우암각 사건이 터진 것이다. ‘당의 무력’이라고 부르는 최정예 특수부대를 보유한 작전부장 오극렬은 정찰총국 신설이라는 조직개편으로 거세시켰다.

지난해 2월께 북한에선 대남공작기관이 개편되고 정찰총국이라는 거대 공작 기관이 탄생한다. 이 과정에서 오극렬이 지휘하던 특수부대(3만 병력)가 정찰총국에 통합된다. 오극렬은 명목상 국방위 부위원장이긴 하지만 실제론 무력화된 것이다.
이 같은 ‘정은과의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정남으로 하여금
‘망명 카드’를 꺼내게 했을 것이란 얘기가 나도는 배경이다.
마카오에서 김정남씨가 권력에서 밀려난 뒤 지인들에게 털어놓은 북한 상황에 대한 언급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교민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나타내기 시작해 더는 업무를 잘 보지 않는다. 나를 혼낼 사람(김 위원장을 의미)도 이젠 기진했다” “과거 아버지가 모든 일을 보실 때는 (북한이) 아무리 강경해도 모종의 메시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고 한다.

또 “북한이 외부에 대고는 문제가 없는 척하지만 사실은 상황이 통제불능이다. 군과 보위부 등이 각자 충성 경쟁한답시고 서로 열을 내지만 아무 내실이 없다”고도 했다.
김정남씨는 한 외국 인사에게 “장성택이 권력 술수는 뛰어나지만 지금은 군부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형국이다. 지금 장성택이 이렇다 할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버지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안 계시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자기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를 만들려 할 것이다. 정은이도 장성택이 내세우고 있는 거고 사실상 장 앞에서는 까불 수 없다. 아버지가 내일이라도 죽으면 정은은 끝난다”는 말도 했다.

그는 “북의 장래를 10년 전만 해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매번 갈 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 앞으로 5년이 변수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홍콩·마카오=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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