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朴文秀, 1691년~1756년)는 조선 후기의 암행어사이며, 문신, 정치인이다.
호는 기은(耆隱),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박항한(朴恒漢)의 아들이다.
1723년 문과에 급제, 한번은 영남 암행어사, 한번은 호남 암행어사로 나갔고
암행어사 때에 많은 일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호는 기은(耆隱),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박항한(朴恒漢)의 아들이다.
1723년 문과에 급제, 한번은 영남 암행어사, 한번은 호남 암행어사로 나갔고
암행어사 때에 많은 일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거지에게 온정을 베푼 박문수
암행어사 박문수가 거지꼴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때였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서 주막에 들었는데, 봉놋방에 턱 들어가 보니
웬 거지가 큰 대자로 퍼지르고 누워 있었다.
사람이 들어와도 본 체 만 체, 밥상이 들어와도 그대로 누워 있었다.
“거, 댁은 저녁밥을 드셨수?”
“아, 돈이 있어야 밥을 사 먹지.”
그래서 밥을 한 상 더 시켜다 먹으라고 줬다.
그 이튿날 아침에도 밥을 한 상 더 시켜다주니까 거지가 먹고 나서 말을 꺼냈다.
“보아하니 댁도 거지고 나도 거진데, 이럴 게 아니라 같이 다니면서 빌어먹는 게 어떻소?”
박문수도 영락없는 거지꼴이니 그런 말 할만도 하다. 그래서 그 날부터 둘이 같이 다녔다.
세 사람 살려주고 사례로 받은 백 냥
제법 큰 동네로 들어서니 마침 소나기가 막 쏟아졌다.
그러자 거지는 박문수를 데리고 그 동네에서 제일 큰 기왓집으로 썩 들어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한다는 말이
“지금 이 댁 식구 세 사람 목숨이 위태롭게 됐으니 잔말 말고 나 시키는 대로만 하시오.
지금 당장 마당에 멍석 깔고 머리 풀고 곡을 하시오.”
안 그러면 세 사람이 죽는다고 하니 시키는 대로 했다.
그 때 이 집 남편은 머슴 둘을 데리고 뒷산에 나무 베러 가 있었다.
저희 어머니가 나이 아흔이라 미리 관목이나 장만해 놓으려고 간 것이다.
나무를 베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자 비를 피한다고 큰 바위 밑에 들어갔다.
그 때 저 아래서‘아이고 아이고’곡소리가 들려왔다.
“이크,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나 보다. 얘들아, 어서 내려가자.”
머슴 둘을 데리고 부리나케 내려오는데 뒤에서 바위가 쿵 하고 무너져 내렸다.
간발의 차이로 위험을 모면하고 내려온 남편은 전후사정을 듣고 거지한데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우리 세 사람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무엇으로 보답하면 좋겠소?
내 재산을 다 달란대도 내놓으리다.”
“아, 정 그러면 돈 백 냥만 주구려.”
그래서 돈 백 냥을 받았다. 받아서는 대뜸 박문수를 주는 게 아닌가.
“이거 잘 간수해 두오. 앞으로 쓸데가 있을 테니.”
박문수가 가만히 보니 이 거지가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시키는 대로 돈 백 냥을 받아서 속주머니에 잘 넣어 두었다.
7대독자 구해주고 사례로 받은 백 냥
며칠 지나서 어떤 마을에 가게 됐다.
그 동네 큰 기와집에서 온 식구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거지가 박문수를 데리고 그 집으로 쑥 들어갔다.
“이 댁에 무슨 일이 있기에 이리 슬피 우시오?”
“우리 집에 7대독자 귀한 아들이 있는데, 이 아이가 병이 들어 다 죽어가니 어찌 안 울겠소?”
“어디 내가 한 번 봅시다.”
그러더니 병 든 아이가 누워 있는 곳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사랑채로 들어가선 주인에게 말했다.
“아이 손목에 실을 매어 가지고 그 끄트머리를 가져오시오.”
미덥지 않았으나 주인은 아이 손목에다 실을 매어 가지고 왔다.
거지가 실 끄트머리를 한 번 만져 보더니
“뭐 별것도 아니구나. 거 바람벽에서 흙을 한줌 떼어 오시오.”
바람벽에 붙은 흙을 한줌 떼어다 주니 동글동글하게 환약 세 개를 지었다.
주인이 약을 받아 아이한테 먹이니 다 죽어가던 아이가 말짱해졌다.
주인이 그만 감복을 해서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7대독자 귀한 아들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 내 재산을 다 달란대도 드리리다.”
“아, 그런 건 필요 없고 돈 백 냥만 주구려.”
이렇게 해서 또 백 냥을 받아 가지고는 다시 박문수를 주었다.
“잘 간수해 두오. 앞으로 쓸데가 있을 거요.”
묘자리 봐주고 사례로 받은 백 냥
며칠 가다가 보니 큰 산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웬 행세 깨나 하는 집에서 장사 지내는 것 같았다.
기웃기웃 구경하고 다니더니 마침 하관을 끝내고 봉분을 짓는 데 가서
“에이, 거 송장도 없는 무덤에다 무슨 짓을 해?”
하고 마구 소리를 쳤다. 일하던 사람들이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네 이놈, 그게 무슨 방정맞은 소리냐? 그래, 이 무덤 속에 송장이 있으면 어떡할 테냐?”
“아, 그럼 내 목을 배시오. 그렇지만 내 말이 맞으면 돈 백냥을 내놓으시오.”
일꾼들이 달려들어 무덤을 파헤쳐 보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과연 송장 든 관이 없었다.
“내가 그걸 찾아 주려고 온 사람이오. 염려 말고 북쪽으로 석자 세 치 떨어진 곳을 파보시오.”
그 곳을 파 보니, 아닌게아니라 거기에 관이 턱 묻혀 있었다.
“여기가 명당은 천하명당인데 도둑혈이라서 그렇소.
지금 묻혀 있는 곳에 무덤을 쓰면 복 받을 거요.”
이렇게 해서 무사히 장사를 지내고 나니, 상주들이 고맙다고 절을 열두 번도 더 했다.
“묘자리를 이렇게 잘 보아 주셨으니 우리 재산을 다 달란대도 내놓겠습니다.”
“아, 그런 건 필요 없으니 약속대로 돈 백 냥만 주구려.”
그래서 또 돈 백냥을 받았다. 받아 가지고는 또 박문수를 주었다.
“이것도 잘 간수해 두오. 반드시 쓸데가 있을 거요.”
백일 정성 끝에 마련된 삼백 냥
그리고 나서 또 가는데, 거기는 산중이라서 한참을 가도 사람 사는 마을이 없었다.
그런 산중에서 갑자기 거지가 말을 꺼냈다.
“자, 이제 우리는 여기서 그만 헤어져야 되겠소.”
“아, 이 산중에서 헤어지면 나는 어떡하란 말이오?”
“염려 말고 이 길로 쭉 올라가시오. 가다가 보면 사람을 만나게 될 거요.”
그러고는 연기같이 사라졌다.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한참 동안 올라가니
고갯마루에 장승 하나가 딱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앞에서 웬 처녀가 물을 한 그릇 떠다놓고 빌고 있었다.
“장승님 장승님, 영험하신 장승님. 우리 아버지 백일 정성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한시 바삐 제 아버지를 살려 줍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박문수가 무슨 일로 이렇게 비느냐고 물어보니 처녀가 울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관청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이온데,
심부름 중에 나랏돈 삼백 냥을 잃어버렸습니다.
내일까지 돈 삼백 냥을 관청에 갖다 바치지 않으면
아버지 목을 벤다는데, 돈을 구할 길이 없어 여기서 백일 정성을 드리는 중입니다.”
박문수는 거지가 마련해 준 돈 삼백냥이 떠올랐다.
반드시 쓸데가 있으리라 하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이로구나 생각했다.
돈 삼백 냥을 꺼내어 처녀한테 건네줬다.
“자, 아무 염려 말고 이것으로 아버지 목숨을 구하시오.”
이렇게 해서 억울한 목숨을 구하게 됐다.
그런데 그 처녀가 빌던 장승이 비록 나무로 만든 것이지마는
가만히 살펴보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아까까지 같이 다니던 그 거지 얼굴을 쏙 빼다 박은 게 아닌가!
출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서정오, 현암사, 1999년)
기은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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