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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상공에 비행기가 처음 나타난 것은 1913년이었습니다.
일본군 나라하라 중위가 몰고 온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이후 일본인과 미국인의 비행시범이 연이어 계속되면서 우리에게도 서서히
비행기의 존재가 알려지게 됩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있던 비행기 역사는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중엽에 쓰여진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를 보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적혀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정평구란 사람이 비차 를 만들어..
진주성에 갖힌 사람들을 성밖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그 비차는 30리를 날았다.]
여기를 보면 비차라고 하는 것이 30리를 날았다고 합니다.
비차, 하늘을 날아 다니는 차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기록을 좀더 자세히 보면 정평구뿐 아니라 윤달규란 사람도 비차 만드는 비법을
알고 있었다고 하고, 그가 전해들은 비차의 모양과 구조에 대해 기록해두었습니다.

이규경뿐만이 아닙니다.
실학자 신경준 또한 [여암전서] 중에 책차제란 대목에서 비차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후손들에 따르면 정평구의 비차를 본 당시 진주
사람들이 선조에게 상소를 올려 그 업적을 보고했으나
조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규경은 자신이 전해들은 비차에 대한 내용을 두 가지로 정리해두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이런 내용입니다.

[비차를 만들어 네 사람을 태우고, 곡형 비슷하게 풀무를 만들어 배를 두들겨
바람을 일으켜 떠서 공중에 올라가 백길 쯤 다닐 수 있게 했지만 겨우 각풍을 만나도
전진하지 못하고 떨어지며, 광풍을 만나면 갈 수가 없다.]
이것은 비차가 어떻게 날았는 지 설명한 대목인 듯합니다.

이것은 이규경이 남긴 두 번째 기록입니다.
[그 기술을 모방하려면 먼저 하나의 수레를 만들어 나르는 연처럼 깃과 날개를 달고 그 속에
기구를 설치하고 사람이 타서, 사람이 헤엄치는 것처럼, 또는 자벌레가 굽혔다 폈다하는
것처럼 하여 바람과 기운을 내게 한다면, 두 날개가 자연히 날아서 한 순간에 천리를
가는 형세를 짓고..]
[그것을 줄로 가로 세로 엮어 매어 신축성이 있게 하고, 비차속에서 풀무질하여 규칙적으로
센 바람을 일으켜 대기위에 뜨게 한다면 그 형세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첫 번째 기록은 원주사람이 만들었다는 비차를 설명한 것이고..
두 번째는 이규경이 정평구와 윤달규 그리고 원주사람의 비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종합한 것입니다.


비차의 모양은 나는 연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연이라는 글자는 새, 즉 솔개라는 뜻도 포함돼있다 할 것입니다.
따라서 새의 모양이 비차의 기본형태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람이 헤엄치듯 움직이며 바람을 일으켰다는 기록은
바로 양 날개를 줄로 이어 조종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러한 형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겨논 스케치와도 유사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비차는 단순히 바람만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원주 사람이 만들었다는 비차에 관한 기록을 보면 풀무같은 장치가 있는데,
이것이 공기를 일으켜 날게 했다고 합니다.
이 풀무가 곧 비행기를 날게 하는 추진장치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조선후기 풍속화가 김홍도의 대장간 그림을 보면 풀무질을 하는 소년이 나옵니다.
풀무라는 것은 대장간에서 주로 사용하던 것으로 펌프질을 하듯이 피스톤을 움직이면
바람이 나오는 장치입니다.


16세기에 살았던 정평구 , 18세기의 윤달규, 그리고 19세기 이규경과 신경준까지
300년동안 이어져온 조선의 비행기, 비차.

19세기에 접어들면 독일 영국 미국 등 여러나라에서 수많은 비행실험들이 이어집니다.
그 노력들이 20세기 초 라이트형제의 비행기를 탄생시킨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때 조선에 살던 학자 이규경과 신경준 역시 비차에 관심을 갖고
그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이 기록덕분에 우리는 비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항공의 이 업적이 계승 발전되지 못하고, 기록으로만 전해져 왔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세부설명]

1. 비차를 만든 사람

비차를 만든 사람은 진주성 전투에서 활약했던 정평구란 인물과 윤달구란 인물이었다.
그러나 비차 발명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가문 족보에 조차 남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기구를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헛소문으로 취급한 것이다.
하지만 비차는 막연한 상상이 아닌 구체적인 사실이었다.

2. 비차의 형태

조선의 비행기, 비차는 어떤 형태였을까?
이제껏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비차 복원을 위해..
건국대 기계항공학부 교수들로 복원팀이 구성되었다.
설계와 기술적인 자문은 우리나라 항공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
전 초경량 항공기 협회장 이원복 교수가 맡았다.
복원팀을 이끌고 실질적인 제작에 참여할 팀장은 윤광준 교수.
그리고 설계부문에 박훈철 교수가 합류했다.
비차 복원팀은 이규경의 기록을 토대로 기본설계 작업에 착수했다.

3. 비차의 원리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하늘을 나는 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구 중심에서 잡아당기는 중력이다.
이 중력을 누르고 하늘로 올라가려는 힘을 보통 양력이라고 하는데..
양력이 중력보다 세면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비차를 만들었던 사람들도 이 원리를 알고 있었을까?
비차는 어떤 원리로 하늘을 날았을까?

4. 비차의 추진장치

기록을 보면, 비차에 풀무 같은 장치가 있는데, 이것이 공기를 일으켜 날게 했다고 한다.
이 풀무가 곧 비행기를 날게 하는 추진장치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비차 복원팀은 이 대목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풀무의 원리를 이용해 비차를 날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추진력을 내는 추진장치는 어떤 형태였으며..
어떤 원리로 비차에 장착되었던 것일까.
더욱이 이규경이 종합한 기록 속에는 비차는 풀무장치뿐만 아니라..
양 날개를 움직여 얻어지는 풍력에다, 자연 바람을 이용하는 방법까지 모두 동원했다고 적혀있다.
복원팀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 과제를 풀어보기로 했다.

5. 비차의 비행
비차 복원팀은 3개월 간에 걸쳐 비차 복원 작업을 완성했다.
이 비차는 과연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비행실험에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복원팀은 정평구가 진주성에서 비차를 날려 30리나 날았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그리고 비차 복원팀은 서울시내에서 진수성과 가장 비슷한 조건을 가진..
몽촌토성을 비행실험 장소로 선택했다.
비행기의 실험비행에는 늘상 위험이 뒤따른다.
이에 대비해 이번 비행은 20년의 전문 스턴트맨이 맡았다.
드디어 모든 비행준비가 끝났다. 조선시대 비차, 과연 비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6. 비차가 사라진 이유

비차는 존재했으며, 하늘을 날았다.
그런데 그런 사실들을 왜 많은 사람들은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은 것일까?
또한 비차를 계속 발전시키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18세기 조선은 이전과 분명 다른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비차가 영원히 전설 속에 묻히지 않고..
기록으로 되살아 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18세기 조선의 사회 흐름 때문이었다. [naver ID: ktk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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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HIS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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