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여성에게 축복이자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2세를 몸 속에서 길러 마침내 품에 안는 벅찬 기쁨의 이면에, 죽음에까지 이를 위험이 있는 극심한 산통을 감당해야 하니까요.
하버드대 피터 T.엘리슨 박사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살면서 죽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순간은 분만(자궁수축)이 시작된 후에 96시간 동안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출산은 여성의 신체에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의 경험에서도 출산은 "엄마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하고 자랑스러운 과정이지만 엄청난 고통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힘겨운 고함소리와 고통스런 표정, 피,양수, 흰 가운의 의사들, 앰뷸런스 등이 떠오르기도 하지요.
그런데 최근 영국 가디언지 사이트를 둘러보다, 믿기 힘든 내용의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내용인 즉, 일부 산모들은 출산 과정에서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http://www.guardian.co.uk/lifeandstyle/2009/mar/18/orgasmic-birth-climax-labour
기사는 하와이에 거주하는 29세의 주부 앰버 하트넬(Amber Hartnell)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앰버는 세돌 반이 막 지난 자신의 아들을 출산할 때 고통이 아닌, '평생 경험해 본 가장 강력한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처럼 '출산 오르가슴'을 느낀 산모들과 함께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습니다.
기사를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이 여성들은 약이나 최면, 자기암시같은 외부 요인들 때문에 고통을 쾌감으로 착각하는 것 아닌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출산과 쾌감을 연결짓는 것이 저에겐 불가능하게 느껴졌으니까요.
궁금증에 '출산 중 쾌감'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봤습니다. 놀랍게도 이런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더군요. 자신이 목격한 산모의 오르가슴을 의학적으로 보고한 산부인과 의사, 산파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책이나 기사 등에서 찾은 '출산 오르가슴'에 대한 증언들을 모아봤습니다.
"출산 전에 사람들로부터 끔찍한 고통을 느낄 것이란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도 성적인 엑스터시를 느낄 거란 얘기는 해 준 적이 없어서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태아가 질을 통과하고 몸 밖으로 나오는 동안, 나는 엄청난 오르가슴을 느꼈습니다."
(출처: They Don't Call it a Peak Experience for Nothing, by Ruth Claire)
"1956년 내 딸을 출산할 때, 나는 진통과 더불어 최고의 오르가슴을 경험했습니다. 마치 내 머리카락 구멍들에서 발톱 끝까지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었지요. 고통스러운 비명은 중간중간 성적 황홀경의 외침으로 바뀌었고 의료진은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믿고 싶지 않은 듯, 난처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몇년 뒤, 나는 이 경험을 한 산부인과 의사와 상담했습니다. 나만 그런 것인지, 세상에 그런 여자가 또 있는 것인지 알아야 했거든요. 그 의사는 원시 여성들 중 출산 오르가슴을 경험한 예가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출처: Sex, Time and Power, by Leonard Shlain)
"많은 산모들이 아기의 머리가 체내로 나오는 순간 찢어질 듯 타오르는 듯한 감각을 느낍니다. 그리고 일부는 그 순간 오르가슴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출처: Mind Over Labor, by Carl Jones, C.C.E.)
"151명의 여성 가운데 32명이 최소 한 번 이상의 '출산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나 자신이 자연분만을 도운 산모들 중에서도 여럿 있었지요."
(출처: 다큐 중,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산파 Ina May Gaskin의 증언)
"출산은 여러모로 보아 오르가슴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호르몬이 그러한데요. 출산시에는 옥시토신과 엔돌핀 호르몬이 방출되고 자궁은 수축하며 유두가 부풀어오르게 됩니다. 오르가슴을 느낄 때와 동일한 신체 반응이기 때문에, 출산시 쾌감을 느낀다는 여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출처: In Labor, by Barbara K. Rothman )
"생물학적으로 여성은 성관계나 애무 뿐만 아니라, 출산과 수유를 통해서도 신체적 쾌감을 느끼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종족 보존을 위해 자연이 마련한 방책이라 여겨지는데요. 안전하고 릴렉스한 상태로 진행되는 출산에서 일부 여성들은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수축에서 성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침내 아이가 나오고, 팔에 안겨지는 순간 여성은 최고의 기쁨을 느끼게 되지요."
(출처: A Good Birth, A Safe Birth, by Diana Korte and Roberta Scaer )
<Orgasmic Birth> 관련, ABC방송 보도>
이같은 '출산 오르가슴' 주장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인체의 신비'라며 막연히 출산을 두려워하는 산모들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며 칭찬합니다. 출산을 힘든 것, 고통스러운 것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수 있는 긍정적인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반대하는 쪽의 목소리가 더 큰 듯 합니다. 이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는 블로그에서는 "어이없다"는 반응의 덧글이 많이 눈에 띠더군요.
아이를 넷 낳았다는 한 어머니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얘기인데, 마치 모든 여성이 출산 중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고 염려했습니다. 고통에서 쾌감을 느끼는 성향을 가진 이들의 'sado-masochistic' 반응이라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사실, '출산 오르가슴'을 느낀 산모들은 일반적인 출산과는 사뭇 다른 환경을 선택한 이들이었습니다.
모두 통증을 줄이기 위한 약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대부분 집이나 산파가 제공하는 장소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출산을 했더군요. 물론, 병원에서도 출산 중 쾌감을 느꼈다는 여성의 증언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 '자연출산' 중에 쾌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출산 오르가슴'을 증언하고 권장(?)하는 이들은 병원이 아닌 가족의 공간에서, 약물을 쓰지 않고 자연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출산의 지지자들인 셈입니다.
예전에 가정 출산에 대한 포스트를 올린 적이 있는데요.
http://kr.blog.yahoo.com/eg_blog/2997.html?p=4&pm=l&tc=61&tt=1238042044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골반은 납작해지는 반면 뇌는 커지게 되었지요. 이 때문에 출산을 더욱 힘겨워졌고, 모성사망율도 높아졌습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병원에서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학 기술의 도움을 받아 출산하는 현재의 '병원 출산 문화'가 생기게 된 것이고요.
의학의 도움이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지는 통계를 보면 금방 납득이 갑니다. 대부분 집에서 출산을 하는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지금도 임신,출산 중 사망하는 산모가 8명 중 1명 꼴로 나옵니다. 반면, 높은 의료 수준을 자랑하는 스웨덴에서는 1만7400명당 딱 한 명만 사망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생활 모든 방면에서 '자연주의'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인위적인 간섭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연이 이끄는 방식 대로 따라가는 것이 가장 건강한 삶이라는 시각인데요. 미국과 유럽에서 자연출산 선호도가 높아진 것 역시 이런 경향을 따른 것이겠지요.
가정에서의 자연출산을 고집하는 이들 가운데는 병원에서의 출산을 '상업주의 논리에 수동적으로 이끌려 가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자연적 순리를 따르겠다는 것은 인간에게 당연한 욕구일 것입니다. 그로 인한 장점도 분명하지요.
하지만, 병원과 의사를 멀리하고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행복'이며 '웰빙'이라는 식의 미화는
다소 무모해보입니다. 분명,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산모도 많으며,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관련 자료들을 제법 찾아 읽었습니다만, 저는 아직 위의 산모들이 정말 '쾌감'을 느낀 것인지,
비상 시에 뇌가 동원하는 '방어'와 '착각'을 쾌락으로 오해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사실이라면 출산을 앞둔 여성들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글쎄요. 가능한 일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관련 참고 기사 및 사이트
http://www.guardian.co.uk/lifeandstyle/2009/mar/18/orgasmic-birth-climax-labour
http://www.timesonline.co.uk/tol/life_and_style/health/features/article5924063.ece
http://www.unassistedchildbirth.com/sensual/orgasmic.html
http://www.orgasmicbirth.com/
'정음정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 여인 (0) | 2009.05.29 |
---|---|
우리의 옜 여인들 모습 (2) (0) | 2009.05.29 |
우리의 옜 여인들 모습 (1) (0) | 2009.05.29 |
"최진영 출연, 고 최진실이 도왔다" (2) | 2009.05.29 |
우린 딸만 낳는다, 수컷은 없다... 암컷들만의 '아마존 개미' 발견 (0) | 2009.04.23 |
다리가 계속 자라는 여인 멘디셀러스 (0) | 2009.04.17 |
단군의 안해 신녀부인 (0) | 2009.04.10 |
中 여인국 이야기 '아버지가 없는 나라' (0) | 2009.03.30 |
서왕모(西王母) (0) | 2009.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