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cafe.naver.com/wellbeinghub/1027   

인디언 기우제’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디언들이 가뭄이 들어 기도할 때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한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이 말에는 비가 올 때까지 기도를 하니 당연히 이루어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섞여있다. 물론 좋게 보는 시각에서는 용기를 잃지 않고 부단히 기도를 하니 그 결과가 좋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해석을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인디언 기우제’란 말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북미 원주민들로부터도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계속 지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바호족의 기우제를 수년동안 관찰한 게리 위더스푼에 의하면, 모두 네 번의 기우제를 관찰했는데, 모두 12시간 이내에 비가 왔다고 한다. 그중의 세 번은 몇시간 동안만 왔고, 한번은 몇일간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기우제에서는 잠시동안만 비가 왔다고 한다.

각각의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어쨌든 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많든 적든 비가 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이웃의 호피족이나 다른 인디언 부족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기도를 하기에 이처럼 비가 오는 것일까? 뛰어난 인디언 주술사들은 우주의 기운을 마음대로 부리는 신비한 재주라도 갖고 있는 것일까?

인디언 공부하면서 늘 궁금해 하던 것이 바로 인디언들의 기도였다. 도대체 그들은 기도를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유명한 주술사들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도 비를 오게 할 수가 있었으며, 반대로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와 같은 사례가 여럿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마침내 얼마전 그 인디언 기도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다음은 그래그 브래든이 전하는 그의 인디언 친구 데이비드의 ‘비기도(rain prayer)’ 내용이다.


미국 서남부에 100년만에 최악의 가뭄이 왔을 때 일이다. 나는 인디언 친구인 데이비드를 따라 그의 부족의 ‘신성한 원(medicine wheel, 둥글게 돌을 놓아 만든 원)’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비 기도를 할 참이었다. 마침내 높은 산정의 능선에 있는 신성한 원에 도착하자, 그는 신발을 벗었다. 얼마나 엄숙하게 신성한 태도로 신발을 벗는지 그 자체가 기도였다. 그는 맨발로 대지 위에 섰다. 그리고 등을 돌려 신성한 원의 돌 가로 걸어갔다. 아무 소리없이 그는 신성한 원을 돌았다. 하나하나의 돌과 그의 조상들에게 존경을 표현하면서. 그의 발은 신성한 원의 돌들로부터 3센티미터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신성한 원의 돌에 발이 닿지 않도록 주의했다. 신성한 원의 가장 바깥쪽 돌을 돌았을 때, 그의 얼굴은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의 눈은 굳게 감겨져 있었다. 그는 시종 눈을 감고 돌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정확히 각각의 돌 옆에 발을 디뎠다. 신성한 원을 다 돌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똑바로 섰다. 그리고 양손을 얼굴 앞으로 모은 뒤 기도했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데도 그의 숨결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기도를 하던 그는 마침내 깊은 숨을 내쉬며 그의 자세를 풀었다. 그리고 내게 왔다. 그가 말했다.

“이제 다 끝났네.”

내가 놀라서 물었다. “벌써? 비를 내려달라는 기도를 하러 온 것 아냐?”

그가 신발을 신고 앉으며 말했다.

“아니, 나는 ‘비가 내리는’ 기도를 하러 온 거야. 만일 내가 비를 내려달라는 기도를 하러 왔다면 결코 비는 오지 않을 것이네.” 

놀랍게도 얼마후 구름 한 점 없던 날씨가 점차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비는 순식간에 굵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검은 먹구름이 우리가 내려오는 골짜기를 뒤덮었다. 비는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홍수가 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우리가 그 골짜기를 빠져나올 즈음 멀리 동쪽 산들과 내가 서있는 골짜기 입구 사이에 펼쳐진 너비 18킬로미터의 거대한 들판이 호수로 변했다. 그날 저녁 지역방송국의 날씨특보는 콜로라도주 남부와 뉴멕시코주 북서지역 전체에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음을 전하고 있었다.

이것은 실화다. 그리고 그래그 브래든이 그의 <이사야 효과>라는 책에서 ‘데이비드 기도’라고 명명한 그 유명한 인디언 기도이다.

다음날 아침 브래든은 데이비드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온통 물난리잖아.”

한동안 침묵하던 데이비드가 말했다. “나는 비기도를 했을 뿐,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것까지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그렇다면 이렇게 오랜 가뭄을 끝내고 비를 오게 한 데이비드 기도, 아니 인디언 기도의 요체는 무엇일까? 데이비드의 말을 들어보자.

“어렸을 때 어르신들이 내게 기도의 비밀을 알려줬네. 비밀의 요체는 이런 거야. 우리와 이 세계의 힘을 이어주는 다리는 바로 우리의 가슴이네.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생각이 결혼하는 것은 바로 여기, 우리의 가슴이란 말이지. 기도하면서 나는 현재의 모든 것에, 그리고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것에 감사를 드렸네. 나는 황무지의 바람에게도, 대지의 뜨거운 열기에게도, 심지어 가뭄에게도. 그런 다음 나는 새로운 메디슨, 비가 내리는 메디슨을 선택했지.

“나는 눈을 감고 신성한 돌 둘레를 돌며 비가 온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네. 그리고 곧 비가 내 몸을 촉촉이 적시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지. 단순히 그렇게 상상한 것이 아니라 깊은 몰입과 집중 속에서 실제로 그렇게 느낀 것이네. 그때 나는 비를 맞으며 마을의 큰 광장에 맨발로 서있었던 것 같네. 비에 젖은 땅이 내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 그리고 태풍 속에서 우리 마을 집의 흙벽과 지붕을 덮은 이엉에서 나는 그 비릿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네. 나는 마을에서 나와 비를 맞으며 가슴께까지 자란 옥수수밭 사이를 걸어갔네. 그 황홀하고 짜릿한 느낌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지....

“눈을 감고서 나는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하는 방식이라네. 뭔가를 원한다면 먼저 그것을 오감(五感)으로 느껴야 하네. 그래서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처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를 맡고, 피부로 느껴야 하는 것일세. 그때 기도는 비로소 힘을 발휘하지. 이것이 우리가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방식이네.” 

데이비드 기도는 말한다. 기도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기도하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온 몸으로 느껴야 한다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는 의미가 없다고. 그런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그것은 단지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먼저 온 몸으로 느껴야 한다고. 그리고 창조에 동참할 수 있게 허락해주신 신들께 감사드려야 한다고.

그런데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인디언 주술사 구르는 천둥이 지적했던 것처럼, 기도할 때 결코 비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도는 이익을 얻기 위한 사사로운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가족과 이웃과 민족을 위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하고, 선함과 밝음을 위한 기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신은 비로소 우리의 기도를 흔쾌히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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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HIS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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