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성모 웅녀부인

 

이 초상화는 단군 왕검의 어머니인 웅녀부인 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단군왕검 아내 신녀부인 영정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래 글에 나오는 안해는 아내를 말합니다. 즉 단군의 아내란 북한 말 입니다
아래 글은 북한측 단군왕검 자료입니다. (운영자)


단군의 안해 신녀부인

고조선의 건국자이며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에게는
다심한 어머니뿐아니라 사랑하는 안해도 있었다.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지리지》, 《수산집》에는 단군의 안해에 대하여
《비서갑 하백의 딸》, 《서하백의 딸》, 《비서갑 신녀》로 기록되여있다.
 
단군의 안해 신녀는 평양서쪽의 대동강가에 위치한
비서갑지방의 우두머리(종족장)인 《하백》의 딸이였다.
신녀는 성품이 단아하고 용모가 출중하여
그 린방은 물론 다른 종족들에서도 넘겨다보는 처녀였다.
 
당시 박달종족 련합체는 세력을 점점 확대하여 다른 씨족, 종족들을
계속 통합해나갔다.  박달종족의 서쪽에 있는 비서갑 종족도 례외가 아니였다.
 
비서갑일대는 앞뒤가 산과 강으로 둘러막힌 천연요새였고
이 종족의 우두머리인 신녀의 아버지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단군은 례의도 밝고 언변술이 능한 측근자인 주인을
비서갑종족 우두머리인 《하백》에게 파견하였다.
 
주인은 《하백》에게 단군의 인사를 전하고 많은 청동제 비파형 단검들과
금은치레거리들을 넘겨주면서 두 종족간의 련합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단군과 신녀의 혼인도 청하였다.
 
그해 가을 풍작을 거둔 두 종족은 단군과 신녀를 축하하는 풍성한 혼인잔치를 마련하였다.
 
그후 단군의 안해 신녀부인은 남편의 주변종족들과의 련합을 적극 지지해주고
물심량면으로 뒤받침해주어 건국의 대업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아들 부루, 부소, 부우, 부여 넷을 낳아 훌륭히 키워 단군의 대를 굳건히 잇게 하였다.
 
맏아들 부루는 모든 국가관리와 사무를 총괄하는 호가로 활동하다가 단군이 죽은 후
고조선의 두번째 왕이 되였으며 부소는 응가(형벌담당우두머리), 부우는 로가(보건담당우두머리),
막내아들 부여는 구가(지방담당우두머리)의 관직에 있었다.
 
주체82(1993)년 평양시 강동군에 위치한
단군릉에서는 단군과 그 안해의 유골이 함께 발굴되였다.
 
전자상자 성공명년대 측정법으로 절대년대를 측정한 결과
당시(1993년)부터 5,011년전의것이라고 확증되였다.
 
이로써 단군은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이 확증되였고
단군의 생애에 자욱을 남긴 한 녀성―신녀에 대한 존재도 밝혀지게 되였다.
 
공화국의 옳바른 민족문화유산보존정책에 의하여 주체83(1994)년에
새로 개건된 단군릉에는 단군과 그의 안해 신녀부인의 유골이 원상대로
복원보존되여 그들의 모습을 알아볼수 있게 되여있다.

2006년 2월 26일
 

민족시조 단군의 어머니,  곰씨부인 (웅녀)

민족사발전에 기여한 이름난 인물들과 장군들에게는 다 그를 낳아 키워주고 따뜻이 보살펴준 어머니가 있기마련이다.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도 례외가 아니였다.
 《삼국유사》에 반영된 《단군신화》와 최근에 발굴된 고고학적자료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5,000여년전 산천경개가 아름답고 물산이 풍부한 평양지방에 살고있던 사람들은 해빛밝은 자기 고장을 사랑하여 《밝음》을 뜻하는 《박달》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들의 종족이름을 지었다.
  단군의 아버지는 바로 박달종족의 종족장이였고 단군의 어머니는 박달종족의 이웃에 살고있던 곰씨족장의 딸이였다.
  곰씨부인(B. C. 31세기말∼B. C 30세기초)은 박달종족련합체 추장의 대를 이어나갈 아들을 용맹스러운 무사로 키우기 위하여 뜨거운 정성을 기울여왔다.
  단군의 나이 열살에 이르던 해 어느날이였다.
  아들을 불러앉힌 곰씨부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종족련합체를 이끌고나가자면 무술훈련에 더 힘을 넣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다. 어머니의 이 말에 단군은 자기도 큰 사람이 되여 세상을 다스리겠다고 대답하고는 다음날부터 붉뫼(단군의 무술터)라는 언덕에서 글공부와 무술련마를 열심히 하였다.
  곰씨부인은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도 종족련합체를 이끌고나갈 미더운 아들의 장래가 더 컸기에 집으로 돌아온 단군을 다시 무술장으로 보냈고 종자가 좋은 말 한필을 사서 직접 살찌워가지고 무술터로 찾아가기도 하였다.
  단군의 칼에 잘리우고 그의 말발굽에 다져져 산에 나무와 풀이 다 없어지고 붉은흙이 드러나 벌거숭이로 되여버렸다는 강동의 붉뫼이야기, 단군이 늘 활쏘기의 과녁으로 삼았다는 묘향산의 천주석이야기, 무술을 닦고 공부를 했다는 구월산의 단군대와 그의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오늘도 울린다는 구월산의 쿵쿵바위이야기 등은 단군의 무술닦기과정을 방불히 전하여주고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추장이 된 단군이 신지, 치우, 고시, 해월, 주인 등 측근자들과 강력한 법과 군대를 가지고 사회를 다스리는 국가를 내오기 위한 활동을 벌리자 곰씨부인은 그를 적극 지지해주었다.
  이리하여 단군은 B. C. 30세기초 동방에서 처음으로 되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첫 임금이 되였다.
  이처럼 곰씨부인은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을 낳아 훌륭하게 키워낸것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력사에 크게 기록을 남긴 첫 녀인이 되였던것이다.
 

Posted by NOHIS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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