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화성인, ‘유리마씨’의 근황은
주간경향  2011-07-20

이전부터 궁금했다. 케이블채널 tvN의 인기프로그램 ‘화성인 바이러스’가
왜 그들, 별난 사람들을 통칭하는 이름을 ‘화성인’이라고 하는지.   

사진은 1991년 서울에서 작품전을 열 당시 유리마씨 모습


오늘 소개할 사람은 그런데 진짜로 화성(?)과 관련 있는 사람이다. 유리마씨. 본명은 유재승이다.

현재 캐나다 오타와에서 살고 있는 유씨의 형 성룡씨에 따르면 유씨가 자신이 화성과 관련이 있다고
처음 믿기 시작한 때는 16살 때. 화성과 관련한 책도 냈다. <화성제국>, <마르스와 비너스> 등의 제목이다.

유씨가 언론의 관심을 끈 것은 1982년. 두 해 전 한국 서울에서 열린 미스유니버스 대회에 참석한 미스 프랑스와 결혼하면서부터. 인터넷웹진 <인터뷰365>에 이 매체 김두호 대표가 실은 회고에 따르면 유씨는 당시 취재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르스입니다. 16살 때 하늘의 계시를 받았어요. 노란 머리 파란 눈에 어깨띠를 두른 여신이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유씨의 ‘확신’에 따르면 그 여신은 ‘미스 프랑스 띠’를 두른 브리지트 쇼케였다. 편지를 통한 열렬한 구애를 쇼케가 받아줬다.

결혼 당시 쇼케의 나이는 27살. 유씨의 그때 나이는 33살이었다.
당시 결혼식은 프랑스 알리에 지방의 토레토 성당에서 열렸다.

그 후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미스 프랑스와 유씨의 결혼생활은 약 1년 정도 지속되었다. 형 성룡씨의 언급에 따르면 “유씨가 홀로 산에 가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만 써서” 결국 파경에 이르렀다. 유씨는 그 후에도 프랑스 현지에서 살았다.

쇼케 이후 또다른 여인을 만나 결혼생활을 했지만, 이 역시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한인이 운영하는 한 레스토랑에서 접시닦이를 하며 생활하는 모습이 10여년 전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누리꾼도 그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구글 검색엔진에 ‘유리마’라는 이름을 넣으면 연관검색어로 ‘미스 프랑스’ 등의 단어가 뜬다.

스위스에 살다가 캐다나로 이민 간 형 성룡씨의 연락처를 어렵게 찾아내 문의해봤다.

가족들과는 연락하고 지낼까. “내가 파리에 간 지 12~13년쯤 되었나, 그때 1990년대 후반에 직접 만났습니다. 파리 센강변을 일주일 넘게 오가면서 깊은 대화를 나눴지만 본인의 사상 때문에 캐나다로 올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어요.” 형 성룡씨의 말에 따르면 가족 중에서 현재 유리마씨와 연락이 되는 사람은 없다.

그는 “과거 동생에 대한 언론보도가 너무 ‘가십’에 치우쳤다”고 말했다. 형은 말한다. “동생은 화성에 대한 집착과 집념 때문에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면이 있었는데, 그건 예술적 지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유씨의 그림은 한국에도 열렬한 추종자(?)가 있어서 한때 화랑에서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성룡씨는 말한다. “우리도 동생의 생사 여부를 몰라 궁금해 하던 차에 한국에서 ‘놀러와’라는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 이경규씨든가, ‘유리마를 만났다’고 언급했다는 거예요. 이씨한테 연락을 취해보려고 했지만 방법도 없고.”

이경규씨. ‘화성인 바이러스’의 출연자가 아니던가. 그러니까, ‘화성인 바이러스’라는 프로그램의 작명은 원조 화성인, 유리마씨로부터 비롯된 걸까. ‘화성인 바이러스’ 측은 이를 부인했다. ‘화성인 바이러스’를 연출하는 이근찬 PD는 “특이한 일반인 남녀를 소개하는 것이 애초의 프로그램 취지”라며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이름이 유래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어쨌든 유리마씨가 아직 생존해 있다면 올해 나이가 63세다.
유씨는 아직도 자신이 화성에서 온 사람이라고 믿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Posted by NOHIS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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