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를 전후하여 땀을 흘리는 신비의 표충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903-2에 위치
표충비는 조선시대 승려신분으로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의 업적을 기리는 비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이름을 높인 스님이다. 글 잘하고 글 잘 쓰는 승려로 명성이 높다.
2010년은 사명대사 입적 400주기를 맞는 해이다.
표충비각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삼비문(三碑門)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표충비는 비석의 정면에 사명대사의 행적과 임진왜란 때의 활약을 적었고, 뒷면에는 서산대사의 공덕과 기허대사의 사적을 적었으며, 측면에는 표충사의 사적을 담고 있다. 세 가지 내용이 담겨있어 삼비(三碑)라고도 불린다.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땀을 흘린다고 하여 일명 한비(汗碑: 땀 흘리는 비)로도 유명하다.
표충비가 땀을 흘리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고, 주변의 지리적 환경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만 큰일이 있을 때 마다 땀을 흘리니 더 큰 호기심만 갖게 만드는 신비스러운 비석이다.
이 신기한 현상은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사명당의 충의정신에 위협을 느낀 일본인들은 일제시대 때 홍제사 정문 앞에 지서를 지어 땀의 양과 땀 흘리는 시기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상부에 보고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표충비 참배객들의 성향까지 분석보고 했다고 전한다.
표충비가 가장 많은 땀을 흘린 것은 1919년 3.1만세운동 때인데, 이때 흘린 땀의 양이 5말 7되라고 한다. 표준도량형으로 환산하면 100리터가 넘는다. 흘린 땀의 계량은 바닥에 무명천을 깔았다가 나중에 짠다고 한다.
나라의 큰일이 있었던 1894년 갑오농민전쟁,1910년 한일합방,1945년 광복,1948년 이승만 대통령취임,1950년 한국전쟁 때 땀을 흘렸다. 최근에 땀을 흘린 사건은 2004년 4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때이다.
표충비는 사명대사의 5대 법손 남붕선사가 나라로부터 ‘표충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현재의 자리에 비석을 세운 것이다.
그 뒤 표충서원은 대사의 8대 법손 천유대사의 주도로 영정사로 옮겨갔다. 이 일을 계기로 영정사는 이름을 표충사로 바꾸었다. 함께 있던 표충서원이 표충사로 이전하고 덩그러니 남은 표충비를 보호하기위해 세워진 비각이다.
영조18년(1742년)에 경북경산에서 돌을 가져와 사명대사의 출생지에 세운 것이다. 좌대를 포함한 총 높이는 380cm,비신의 높이 275cm,너비 98cm,두께 56cm인 거대한 대리석이다.
밀양의 3대 신비 중 하나인 표충비각에서 사람들은 새벽기도를 많이 올린다고 한다.
이곳은 1998년 9월 일대 주변정비 사업으로 경관이 깨끗하다. 경내에는 봄을 기다리는 황금잔디가 평온해보였다. 현재 홍제사에서 표충비각을 관리하고 있었다. 무안소방서 지붕이 기와로 되어있어 이색적이다.
표충비각 옆에는 무안초등학교가 있는데, 학교 안 사명대사의 동상이 담 너머로 표충비를 내려다 보는 모습처럼 보인다.
표충비각 경내에는 수령이 약 250년 된 향나무가 있다. 마치 녹색의 커다란 양산을 펼쳐 놓은 것 같은 향나무는 영조18년(1742년)에 사명대사의 5대법손 태허당 남붕선사가가 표충비를 건립하고 그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 전한다.
자료 인용 :  밀양시보 


밀양 표충비와 비각 사진들

 

 표충비각 파노라마




표충비 실시간 영상 바로가기
     ☜ 밀양시청 문화관광 사이트로
 

Posted by NOHISAN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