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한 노인
때는 1763년(혹은 1768년이라는 기록도 있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에는 오웬 파피트 (Owen Parfitt)라는 늙은 노인이 살고 있었다. 이 노인네는 젊었을 적엔 뱃사람이었지만 이 당시엔 이미 60대 후반의 고령에다가, 이 당시엔 이미 제정신이 들락날락하고 육체적으로도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말년의 힘없는 노인이었다.
노인은 은퇴한 후 여동생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것과, 여동생이 옮겨주면 문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아무나 붙들고 왕년의 경험담을 떠벌리는 거였다. 뱃사람들이야 워낙 거칠기로 유명하니까 각종 사건 사고도 많았을 터이고, 여자와의 썸씽도 많았을 것이고, 뭐 그런 무용담들이었다.
그날은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여느날처럼 여동생과 이웃집 아줌마 한 명이 노인을 문 밖 의자에 앉혀 놓았고, 그는 거기 앉아서 공기를 쐬고 있었다. 여동생은 노인의 어깨와 가슴 위에 코트를 하나 덮어 주고는 2층으로 올라갔고, 이웃집 아줌마도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때는 저녁 6시경. 노인이 앉아있는 행길 건너편에는 농장이 하나 있었는데, 이날은 폭풍우가 올 것 같은 날씨 때문에 일꾼들이 서둘러 짚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 15분쯤 뒤.. 2층에 있던 여동생은 갑자기 뭔가 우당탕 하는 소리에 급히 아래로 내려왔다. 자기 오빠가 의자에서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면서... 그런데 그녀가 발견한 것은 코트만 덩그러니 덮여 있는 빈 의자였다.
걷지도 못하는 노인이 어디 갈 리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건 심봉사 눈 뜬 것보다 몇배나 큰 사건으로, 자기 발로 걸어가는 노인을 보면 마을에선 난리가 났을 터였다. 게다가 그 길은 꽤나 행인이 많은 곳이라서 남의 눈에 안 뜨이게 무엇을 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이웃 사람들이 몰려들어 주변을 수색하고 난리가 벌어졌지만 노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라진 노인 덕분에 그 지역은 한동안 떠들썩했다. 젊었을 때 저질렀던 나쁜 짓들 때문에 신이 벌을 내려서 악마한테 잡혀갔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노인이 알고 있는 보물 위치를 알아내려고 누군가 납치해 갔다고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노인이 평소에 떠벌렸던 옛날에 저지른 범행들의 공범이 노인의 입을 막으려고 유괴해 갔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길에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어떻게 노인을 데려갈 수 있었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지만...
세월이 흐른 1813년, 집을 수리하던 옆집 주인은 돌벽 틈에서 웬 해골 하나를 발견한다. 노인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곳이었는데, 누군가 시체를 벽 틈의 빈 공간에 쑤셔넣은 것이었다. 그 해골은 키가 작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로 그것이 노인의 유골이라고 생각했지만, 검시 결과 젊은 여성의 뼈로 판명되고 말았다.
그 덕분에 다음해인 1814년, 지방 검찰이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재수사를 벌이게 된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1933년 이 지역이 대대적으로 재개발될 때에도 혹시나 유골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 사람도 있었지만 역시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사라진 노인... 그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쯤 몇몇 독자들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게 무슨 초자연적 미스테리냐고. 맞다.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음을 계속 보시라...
 
사라진 구두수선공
영국의 구두 수선공인 제임스 워슨은 자기 자랑과 허풍이 심한 사람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오래 달리기를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떠벌리기를 좋아했다. 약간 바보같긴 하지만 먹는 거 많이 먹을 수 있다고 자랑하는 내 친구 이모군보다야 백배 나은 것 같다.
1873년 9월 3일, 친구 두 명(포목상을 하는 와이즈, 사진사인 번스)은 그에게 내기를 걸었다. 60km 정도 떨어진 마을까지 뛰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물론 큰소리 뻥뻥 치던 그는 그 즉시에서 오케이 했다. 그리고 조금의 준비 후에 그날 당장 뛰기 시작했다. 두명의 친구는 마차를 하나 빌려서 뒤에서 천천히 쫓아갔다.
처음 몇 킬로미터 정도는 별 문제가 없었다. 워슨은 뛰어갈 뿐 아니라 마차 타고 쫓아오는 친구들과 농담따먹기까지 할 정도로 여유만만이었다. 얘기를 하면서 갔으니 그들 사이의 거리는 불과 오륙미터 정도.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워슨은 돌부리에 채인 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는 넘어지는 사람 답지 않게 엄청난 공포의 비명을 순간적으로 지르더니.... 사라져 버렸다. 뿅 없어져 버린 것이다. 두 명이 보고 있는 눈 앞에서. 마치 증발된 듯이.
친구들은 경악했다. 얼이 빠져 경찰에 신고했고 이윽고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되었지만 그는 이후 영영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사라진 농부
사람이 뛰어가다가 사라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게다가 증거 자료가 부실한 것 같다고? 그렇다면 이걸 읽어 보시라. 이것은 법원 자료까지 남아있는 사건이다.
1854년, 미국 알라바마 주 '셀마'라는 곳에 살던 농부 윌리엄슨은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흑인 노예들을 부리던 남부의 백인 농장 주인이었다. 주인답게 그날 그는 낮에 부인과 아이를 데리고 우아하게 베란다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 베란다 앞에는 약 삼사십미터 폭의 밭이 있었고, 그 바깥에 길이 있었다. 길 너머엔 이웃집 농장이 있었는데, 그곳엔 열명 정도의 흑인 노예들이 작업반장 (요즘 말로 십장)의 감시 및 통제에 따라 일하고 있었다. 농장이니만큼 넓은 들판이었고, 큰 나무나 시야에 방해가 되는 물건은 없었다.
시가를 뻑뻑 피우던 윌리엄슨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이 이웃 농장의 작업 십장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러 간다. 새로 말 몇마리를 주문했는데, 그것 때문에 할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는 자기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길을 건너고, 이웃 농장의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때는 마침 아머 렌(Armour Wren)이라는 또다른 이웃집 주인이 지나가는 길이었다. 렌은 작은 꼬마 아들과 흑인 하인 한 사람과 함께 마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 일행을 본 윌리엄슨은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렌이 타고 왔던 말이 어디에 발이 걸린 것처럼 비틀거렸다. 렌이 잠시 말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옆에 있던 그의 어린 아들이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빠, 아저씨 어디갔어?" 라고.
그 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불과 몇초 전까지 그 자리에 있던 윌리엄슨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들판 한가운데서 말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사방에서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왔고, 대규모의 수색대가 조직되었다. 무려 300명이 양팔간격으로 일렬로 서서 농장을 샅샅이 훑었지만 - 혹시 땅에 이상한 구멍이라도 있지 않은가 싶어서 -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여러 사람의 증언을 듣고 종합한 법원은 그가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법에 따라 재산이 상속된다.
한편, 베란다에 있던 그의 아내는 그가 사라지는 순간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공포에 질려 마구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고, 그 후에도 한참동안 히스테리 증상을 보였다 한다. 그녀는 남편이 사라진 그 지점에서 "나 좀 도와줘 여보" 하는 희미한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한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그리고 그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약해져서 몇 주일 후엔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한다.
당시에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이야기는 50년이 지난 후, 비어스(Bierce)라는 작가가 그때까지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이 사건에 대한 책을 발간한다. <The Difficulty of Crossing a Field>라는, 1909년에 출판된 책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후일 비어스는 멕시코에 취재차 갔다가 그 스스로가 홀연 사라져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사라진 마을
그래도 못 믿겠다고? 그렇다면 이걸 보시라. 작은 소도시 하나가 몽땅 사라져 버린 사건이다.
1930년 겨울 캐나다의 추운 북부지방.
모피 사냥꾼 (덫을 놓아서 짐승을 잡고 가죽을 벗겨 팔아먹는 사람)인 조 라벨(Joe Labelle)은 Anjikuni 호수 주변에 있는 한 에스키모 마을에 걸어서 도착했다. 한겨울 먼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지칠대로 지쳐있던 그는 따스한 음식과 잠자리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마을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한두명도 아니고 자그마치 인구가 2천명이나 되는 소도시가 유령마을이라도 된 양 너무나 조용했던 것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도 없었고, 썰매를 끌던 그 수많은 개들도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썰매니 카약이니 하는 것들로 사냥을 오가는 사람들 덕분에 떠들썩해야 할 그곳에는 쥐새끼 한 마리 없었다. 2천명이 말이다.
저만치에 모닥불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얼른 가 보았지만, 그 불 위에는 이미 검게 눌어붙은 냄비만이 타고 있었다....
그는 헐레벌떡 가까운 이웃마을로 뛰어가 (들리는 얘기로는 도착할 때까지 한번도 쉬지 않았다 한다. 아마도 졸라 무서웠겠지. 뒤에서 뭐가 쫓아오는 것 같고 뒷골이 땡기고..) 경찰에 전보를 친다. 신고를 받고 몇시간 후 달려온 캐나다 기마경찰(Royal Canadian Mounted Police)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 에스키모들이 목숨처럼 들고 다니던 라이플 총도 그대로 벽에 세워둔 채였고, 낚시대도 마치 손질중인 것처럼 놓여 있었다. 낚시대나 총을 그렇게 버려두고 몽땅 어디로 가버린다는 건 에스키모인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곧 대규모의 수색대가 파견되었다. 그들은 이윽고 썰매끄는 개들이 죽은 채 땅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개들의 사인은 굶주림이었다. 모든 음식이 마을에 그대로 남아있었는데 말이다.
마을 밖으로 이어진 어떤 발자국도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짐을 챙겨서 떠난 것 같지도 않았다. 모든 살림살이는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오직 사람만이 쏙 빠진 것이었다.
게다가 그중에서도 가장 기괴했던 것은... 묘지에 가 보니 조상들의 묘가 모두 파헤쳐지고 그 안에 있는 유골이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때는 한겨울, 얼어붙은 땅은 시멘트처럼 딱딱했고 그때 포크레인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도대체 누가, 왜, 묘를 파헤쳤을까?
수색대가 밤에 묘한 색의 빛을 내는 시가 모양의 낯선 비행체를 목격했다는 설도 전해져 오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과연 2천명의 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사라진 가족
1975년 9월 5일, 연휴를 맞은 카우든 씨 부부와 두명의 아이들, 총 네명은 미국 오레곤 주에 있는 Rogue River National Forest Campground에서 캠핑중이었다.
일요일 아침, 아이들의 아버지인 리처드 카우든 씨는 가까운 마을에서 우유를 샀다. 그것이 그들이 목격된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들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저녁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리처드 카우든 씨의 모친은 혹시나 싶어 경찰에 신고를 했고,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우선 야영장으로 갔다. 경찰이 발견한 것은 멀쩡한 텐트였다.
차도 그대로 주차되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마시던 우유컵도 그대로였고, 텐트며 코펠 버너 등도 전부 그대로였다. 부부의 지갑도 그대로 있었고 아무것도 없어진 것은 없었다. 그 네명만 빼고....
 



전 세계적으로 접수되는 실종신고는 한 해에 2백만명이라고 한다. 
개중에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게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사람들이 많다.
항해를 나갔던 배가 사람은 없어진 채 빈 배만 돌아온다든가,
비행중이던 비행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도 많다.
물론 그런 이야기들 중에는 가짜도 있다.
유명한 David Lang 실종사건은 후일 한 작가의 픽션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출처 : 딴지일보 미스테리 추적반  200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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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HIS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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