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없는 나라' 출간

2007년 11월 13일(화) 6:17 [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중국 윈난성 오지에는 '딸들의 나라' 또는 '여인국'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이곳 여자들은 평생에 걸쳐 여러 애인을 두고 많은 자녀를 낳는다. 자녀 중에서도 아들보다는 딸을 선호한다.

자녀들의 아버지가 여러 명이라고 해서 여자들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없다. 헤어진 애인과 추하게 싸우는 모습도 이곳에서는 보기 힘들다. 다른 사람의 흉을 보거나 남의 개인사에 왈가왈부하는 일도 없다.

아버지의 집이 아니라 어머니의 집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유대감이 넘쳐나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곳, 이곳이 바로 '모쒀족'이 일궈놓은 모계사회다.

양얼처나무(41)는 이런 모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15세 때 생전 처음 그곳을 벗어나 우연한 기회에 노래경연대회에 참가한뒤, 가무단과 음악학교에 들어가 춤과 노래를 배우고 글자를 깨우쳤다.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을을 도망쳐 나온 그녀는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가수, 모델로도 활동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아버지가 없는 나라'(김영사)는 양얼처나무와
서양 인류학자로는 처음으로 모쒀족 연구 허가를 받은 크리스틴 매튜(53)가 함께 쓴 책이다.

모쒀족 여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았다. "사랑은 계절과 같아서 왔는가 하면 또 가버리기 때문에" 결혼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 집안의 자매와 여러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았다.

사랑을 선택하고 애인과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여자들의 일이다. 남자가 애인의 집을 찾아와 창문을 두드리면 문을 열어준다. 그러나 그 남자의 가방을 문 앞의 못에 걸어두면 여자가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얼처나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바람 같았다. 늘 바쁘게 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집을 이끌어 갔던 것은 여자들이었다.

모계사회에서 남자들은 "산에서 야크를 치고, 말을 타고
대상(隊商)을 따라 바깥세상에 나가 물물교역을 하는 일"을 맡았다.

책을 함께 쓴 크리스틴 매튜는 자손의 보존이라는 부담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남자도 모쒀족의 방식에서 충만감을 느꼈다고 바라본다.

이어 모쒀족이 "성적인 자유와 사랑, 경제적 안정과 혈통 유지,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은 대신 결혼제도를 폐기함으로써 음식과 애정, 재산, 가계 등 존재의 본질들이 모계의 유대감을 통해 천부의 권리로 주어지는 사회를 성취했다"고 평가했다.

강수정 옮김. 336쪽. 1만1천원.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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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여인국 뭐쒀족 저우혼 소개

중국의 쓰촨성(四川省)과 맞닿은 윈난성(云南省)의 끝자락에 "루구후"(泸沽湖)라고 불리는 천지(天池)같은 호수 하나가 있다. 해발 2690m인 호수 한 쪽에 검은 빛을 띤 높은 바위산이 있다. 이 호수와 산자락에 뭐쒀족(摩梭族)이 흩어져 살고 있다. 13억이 넘는 중국 인구 중 뭐쒀족은 3만에서 4만 명으로 추정된다. 여기는 주위가 모두 산으로 산 밖의 세상으로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2000년 이상 이어 내려온 모계사회의 전통을 갖고 있다. 여자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자신이 혼자 기른다. 아이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집안에선 할머니가 최고의 어른이다. 

가장 독특한 문화로 그들의 혼인풍습인“저우훈(走婚)”이 있다. 저우훈을 간단하게 말한다면 “남자는 장가들지 않고, 여자는 시집가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뭐쒀족은 18세가 된 이후로 남녀는 이성과 자유스럽게 만날 수 있는데, 각자 자신의 어머니의 집에서 살면서 생활하고, 밤이 되면 남자는 자신의“아샤(阿夏)”(아샤란 뭐쒀어로 교제하고 있는 연인관계를 뜻하는 말임. 남녀 모두에게 통용되기도 하고, 남자에 대해서는“아쭈(阿注)”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를 찾아 가고 날이 밝기 전에 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뭐쒀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되고, 어머니의 집안에서 크게 된다.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생활, 재산 등에서 필연적인 관계가 없고 아버지는 아이의 부양에 대해서 규정된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아이와 아버지는 자주 왕래가 있기 때문에 아이는 물론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고 있단다. 이 같은 뭐쒀인의 결혼문화를 선망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조혼문화에도 아래와 같은 규율이 있다.

"아샤”는 결혼이 아닌 교제의 관계이기 때문에 남녀 모두 일생에 몇 번의 아샤를 만날 수 있지만, 한번에 2명과 동시에 아샤관계를 가질 수는 없다. 이전의 아샤와 반드시 헤어진 후에만 새로운 아샤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아샤관계는 아무런 물질적, 사회적 관계없이“사랑”으로 이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마음이 식으면 헤어질 수도 있다. 얼마나 오래 아샤관계를 유지하는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젊은 시절에는 자주 바뀌지만 중년 이후로는 한 명으로 정해지고 평생을 가기도 한다. 남녀 중 어느 한쪽이 아샤관계를 그만두고 싶을 때, 즉, 남자가 밤에 왔을 때 여인이 문을 열지 않고 받아주지 않거나, 남자가 아샤를 다시 찾지 않을 때에 그들의 아샤관계는 끝난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뭐쒀인의 혼인관계를“저우훈”이라고 하는 것이다

서로가 아샤관계일 때에는 남자는 여자 측의 부모님 모르게 아샤 방에 들어가고, 아침에 일찍 방을 나와 서로의 관계는 둘만의 비밀로 유지한다. 후에 아이가 생기면 비로소 아샤 측의 부모님을 정식으로 찾아 인사하고, 이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어서 낮에도 아샤의 집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이 저우훈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이가 생기면 동네사람들을 초대해 잔치를 하고 아버지인 남자가 아이의 옷과 음식을 만들어 온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와 같이 살지 않고 아이와도 함께 살지 않는다. 아이의 양육이나 교육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책임과 권한 속에 놓인다. 뭐쒀족의 아들과 딸은 평생 어머니를 떠나지 않는다.

못질을 하지 않고 지은 통나무집에는 어머니에 대한 존경의 예(禮)가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어머니는 불신(火神)을 모신 작은 사당과 음식을 만드는 화덕 옆에 침상을 놓고 지내는데 그 방의 문은 누구든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도록 낮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현대화한 오늘 사회에 아직도 여성이 사회를 지배하는 모계씨족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민족이 있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물결에 뭐쒀족이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현재,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Posted by NOHIS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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